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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응급상황, 세살짜리 한의사의 선택
  • 날짜 : 2009-04-21 (화) 16:33l
  • 조회 : 9,717

창밖으로 봄바람은 살랑살랑 불어오고 벚꽃은 그 바람에 따라 날리니 마음 또한 설레어 무작정 떠나고 싶어지는 화창한 주말. 그 때 머리채를 확 잡아당기듯 몽롱한 정신을 깨우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당직’이다.

필자 병원의 당직은 레지던트 1년차가 병동 당직을, 레지던트 2년차가 주중의 야간 응급실당직실을, 레지던트 3년차가 주말의 응급실당직을 맡고 있다(물론, 인턴들은 이 모든 당직업무를 돕고 있다). 주말당직은 토요일 오후 1시부터 다음 주 월요일 오전 9시까지를 말하는데 무려 44시간 동안 이어지는 응급실 당직이다.

물론 년차가 올라갈수록 당직 횟수가 적어 불평을 늘어놓기에 부끄럽지만 화창한 봄날에 응급실 당직이라니 급격히 우울해진다. 비가 오기를 그렇게도 빌었건만(아멘!)… 하늘에는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는다.

푸념도 잠시, 기억은 또 꼬리를 물고 작년 가을경 야간 응급실 당직을 설 때로 여행을 떠난다. 밤 10시쯤 되었을까. 생후 3개월된 아기가 엄마의 등에 업힌 채 할머니와 함께 응급실을 방문했다.
38.5℃의 체온, 병력을 물어보니 이틀 전부터 발열이 있었다. 하루 전에는 39.5℃까지 체온이 올라갔으며 경련을 4차례나 했을 뿐만 아니라 그 중 한번은 경련 지속시간이 20분이나 넘었다.
지속시간, 횟수, 나이 모두 예후가 불량한 경우에 들어가며 섣불리 열성경련으로 진단을 내릴 수 없는 환자였다. 아기의 팔에 수액이 달려 있어 물어보니 집 근처의 병원 응급실에 가서 진찰을 받고 항경련제 주사를 맞았다고 했다.

또 피검사와 뇌척수액 검사를 받았는데 검사 결과도 듣지 못한 상태였다. 서둘러서 한방응급실에 온 이유를 묻자, 할머니는“열 경기에는 손가락을 따야 낫는다고 들어 왔다”고 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단순한 열 경기가 아니라 중추신경계의 감염으로 인한 경련일 확률이 더 높아 보였다. 적어도 뇌 척수액 검사결과는 확인해야 하는 것이 우선이다. 경련발작 지속으로 2차적 뇌손상이 더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일단 사봉혈을 사혈한 다음 우려되는 상황에 대해 설명을 하고 돌려보냈다.

한방병원에서 인턴과 레지던트과정을 겪으면서 얻는 장점 중 하나는 양방적인 의학적 지식을많이 알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 그로 인해 스스로의 한계를 규정짓기도 한다.

이 경우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기에게 우려되는 상황과 그에 따른 양방적 검사와 치료법, 한의학적 변증과 치료법이 떠올랐으나 이런 환자를 치료해본 경험이 없는 3살(?)짜리 한의사로써는 한방치료를 적극적으로 권유해 입원해서 치료해보자고 말할 용기가 없었다.

“한방 환자 왔습니다!”간호사의 낭랑한 목소리가 몽롱한 정신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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