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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촌이 땅을 사서 배가 아플 때
  • 날짜 : 2009-04-21 (화) 15:03l
  • 조회 : 7,460
2001년, 같이 점심을 먹던 중 의대 교수님으로부터 특허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그 뒤 변리사와 상의를 거쳐 신경세포 보호물질에 대한 물질특허를 신청했다. 세포실험과 동물실험에서 신경세포의 재생(neurogenesis)과 사멸(apoptosis) 억제효과를 확인했는데, 당시에는 신경세포 보호와 관련된 한약 연구가 거의 없었다. 때문에 특허의 중요한 두 가지 조건, 즉 독창성과 진보성에 대해 어느 정도 갖췄다고 판단했다. 비록 조성물 자체는 東醫寶鑑小兒의 語遲처방인 六味地黃湯에 五味子와 鹿茸을 각 4그램 추가한 처방이어서 전혀 독창적이지 않았지만, 비아그라가 협심증 치료제로 개발되었다가 후에 발기부전 치료제로 재허가 난 것과 같이 그 비슷한 의미를 지닌 것으로 이해되었다.

이런 저런 검토 끝에 이 낯선 시도가 주는 즐거움에 매료되어 특허 출원을 했는데, 여기에는 신경세포 보호라는 근거 외에 시커먼 속내도 있었다. 그 속내의 발단은, 향후 한약(한약재이든 처방이든)의 약리학적 특성이 밝혀지고, 약효성분이 추출되어 제약산업이 번창할 때 한의사가 배제된 채로 약사와 의사에 의해 진행될 것을 우려한 위기감에서 시작되었다.

안타깝게도 기우로 끝나지 않고 2008년 현재 우리의 현실이 되었다. 그때 꾼 나의 백일몽을 소개하자면, 이건에 대한 특허권이 인정되면 일단 제약회사에 20년간로열티를 받고 특허권을 빌려주기로 한다는 것이었다.

그 대신 이 약물의 법적 지위가 일반의약품 내지는 전문의약품이 되어 현행법상 한의사가 사용할 수 없음의 불합리함을 지적하며, 한약제제의 처방권리를 한의사도 갖도록 법적 투쟁을 하겠다는 게 두 번째 목표였다.

법적 투쟁의 명분은 진작부터 있었는데 로열티로 수입이 생기면 실탄까지 준비되는 게 아니겠는가? 나름 win-win전략이라고 생각했다(^^).

출원 이후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 이 건에 대한 심사를 마친 서류가 특허청에서 특허법률사무소로 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출원은 기각되었다. 기각사유는 이러했다. 처방구성 약재들이 이미 일본과 중국에서 뇌기능 개선과 관련하여 특허가 난 상태이므로 독창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판단의 근거자료라고 보내온 첨부자료의 내용을 확인해보니 허술하기 짝이
없었으며 한심한 수준이었다.

즉, 일본과 중국에서 특허권이 인정된 자료는 신경세포 보호나 재생에 대한 연구는 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한 줄의 언급도 없었다. 단지 뇌기능 개선이라는 용어가 우리가 신청한 특허 출원 사유와 동일했다. 예를 들어 山藥의 경우‘포도당이 고갈되는 아침식단에 山藥을 넣어 (중국)학생들의 뇌기능을 향상시키는 빵(제품) 개발과 관련해 특허가 있으므로’구성물질 중 산약에 대한 부분은 인정될 수 없다는 식이었다. 산약이 구체적으로 신경세포에 어떤 기능을 하는지에 관해서는 아무자료가 없었으나 뇌기능 어쩌구 하는 부분이 일치하므로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의 제기를 하기로 했는데, 문제는 신경세포를 보호하는 약재의 구체적인 성분을 형광분획 등의 연구를 통해 밝혀내지 못하면 심사관을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처방전체 혹은 약재별로 실험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의 예상비용을 의논했는데, 엄청났다. 아쉽게도 기초연구는 물론 임상연구를 하기 위해 이미 비용이 많이 들어간지라 내겐 그만한 여유가 없었다.
결국 항소를 미루다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2005년과 2006년, 식약청에서 전국의 약대 등에 발주한 연구용역의 결과에 보면 오미자에 들어있는 gomisin N, Schisandrol A, Schisandrin A 등이 신경독성으로부터 세포 보호효과가 있음이 밝혀졌다. 신경세포보호물질은 地黃에도 들어있다. 관련연구들은 해외학술지에 기고되거나 국내외 특허출원이 진행되고 있다.

어디 이 뿐이랴? 요즘은 신경세포보호효과가 있다고 밝혀진 20여개의 한약재(성분)가 거론되고 있고, 앞으로더 많은 연구결과가 나오리라 본다. 노인인구와 암환자가 증가하는 앞으로 몇 십년간은 치매환자를 겨냥한 항치매제와 암환자의 면역을 개선시키는 약제 개발이 주목을 받고 있다. 몇 안되는 거대한 의약품 시장이기 때문에 제약회사들이 눈여겨보고 있다. 3~4년 전 모 제약회사 연구개발이사를 만나서 식사를 하는데‘백 선생님, 유예하는 비용을 물고서라도 특허를 포기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하는 얘길 들었다. 특허에 대해 좀 더 잘 알았더라면, 준비를 좀 더 치밀하 게 했더라면 개꿈만은 아니었을 터지만, 당시는 아는 게없어서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요즘 제약회사들이 천연물신약 개발에 열심이다. 부작용이 적은 장점을 바탕으로 한약제제가 성장일로에 있다. 예를 들어 위령선과 하고초, 과루근 이 세가지를 에탄올 30%에 추출한 약인 SK케미칼(주)의 조인스정은 일반의약품이었던 작년에도 보험청구액만 무려 120억원대에 달했다. 게다가 올해는 관절염치료제로서 전문의약품으로 전환된 터라 저렴했던 개발비에 비해 매우 높은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동아제약의 자존심이라고도 불리는 급만성 위염치료제인‘스티렌’역시 쑥(艾葉)에서 추출한 성분 그대로다.
작년 보험청구액 3위를 기록했고 매출액이 602억원이었으며 올해 700억 이상의 매출액을 예상하고 있다.

이 약들은 개발단계에서 특허는 물론이고, 신약 개발의 과정인 전임상에 대한 실험과 임상시험을 거쳐 시판이 되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한약보험제제는 영업의 아무런 이익이 없고 부가가치가 발생하지 않은 지 오래라 제약회사로서는 미래가 없는 일이며, 축소일로에 있다. 영세한 우리나라 제약회사의 실정에서 그나마 개발할 수 있는 분야는 한약보험제제가 아니라 한
약재를 통한 신약일 것이다. 노다지는 아닐지라도 비용대비 상당한 매력이 있는 모양인지 제약회사대상 설문조사결과에도 긍정적 대답이 많았다. 5년 전 보고서내용과도 다르다.
천연물신약 개발에 한의사(교수 포함)가 낄 자리가 있을지 묻는다면 물론 있다고 대답하겠다.

역량이 되는 한의사는 이 과정을 주도해도 좋다고 본다. 한의사(혹은 한의대교수)가 국책연구에서 하는 역할이 겨우‘황련은 淸熱瀉火한다’고 조언하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는다면, 가능한 일이다. 한의대학생도 할 수 있는 말, 중의학 서적에 버젓이 나와 있는 수준의 언급으로는 연구자에게 아무 권위도, 이익도 없다.

한의학은 철학도 아니며 실험실 과학도 아니다. 이 실용적인 학문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한의사제도가 없어지더라도 남을 것임을 일본이 100년 이상 잘 보여주고 있다. 요즘 한의원 경영이 어렵다고 아우성치는데 비해 한약제제는 천연물신약이라는 이름으로 시장에서 잘 팔리고 있는 현실을 둘러보라!

그들과 우리의 차이는 어디서 발생하는가? 여기에 대한 다방면의 성찰이 필요하다. 진료하는 한의사가 왜 신약개발에까지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의문일 수 도 있겠지만, 오늘은 물론 내일에도 영향을 줄 환경에 대해 무지하다는 게 자랑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임상가(한의대교수 포함)라면 한약제제 개발에 있어 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 아이디어를 갖고 있으면, 연구를 수행할 조직에 참여하고, 연구비를 따오든 자비량으로 해결하든 기초연구를 수행하는 시도를 하라! 한약제제 신약으로 잘 먹고 잘 사는 옆집 의사와 약사가 부러운가? 배가 아픈가? 아프다면 한의사의 두뇌로 어렵지도, 오래 걸리지도 않을 주변학문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일에 힘쓰기를 권한다. 나는 옆집이 기울인 수고와 그에 따른 보상을 존중한다. 그리고 앞집, 뒷집의 한의사 집안들에서 나의 배를 아프게 하는 소식이 크게 들리기를 간절히 바란다.

백 은 경 원장
해마한의원 한방3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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