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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길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09-04-21 (화) 15:28 조회 : 3253

627940185_b55ee847_B9E9C0BAB0E6.jpg나는 장애아동을 진료한다. 한의원에 오는 아동의 대부분은 지능이 낮고 말이 늦다. 지능이 평균인 아동이 있다하더라도 ADHD, 틱장애, 학습장애, 뇌병변장애 등 다양한 핸디캡을 갖고 있다. 다양한 유형, 다양한 수준의 장애아동을 만나다보니 웬만한 장애는 새삼스럽지 않을 정도로 익숙해졌다. 물론 나 역시 처음부터 낯설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장애아동을 만났을 때가 13년 전이다.
우연히 주말교실의 자원봉사자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자폐아 정신지체아 뇌성마비아를 봤다. 눈길 한번 주지 않고 그저 달력의 숫자에 집착했던 자폐아동, 여덟 살이 되도록 말 한마디를 못했던 정신지체아동, 허리가 낫처럼 90도로 구부러져 있었던 뇌성마비 아동, 이 세 명이 내가 처음으로 만난 장애아동들이었다.

얼마나 낯이 설던지 두렵기까지 했고, 대학에서 배운 지식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았다. 3년간 이 아이들을 꾸준히 진료하면서 참 여러 가지를 느꼈다. 부모들의 절망, 사회의 냉대와 무관심, 경제적 어려움, 전문가와 교육기회 부족 심지어는 가족의 해체 등 요즘에 비해서도 무척 비관적인 상황들을 봐야했다.

그런데 이런 조건 하에서도 희망이 있었다면 바로 부모들의 태도였다. 자녀의 장애에 대해 충격을 받다가 우여곡절 끝에 자녀의 장애를 받아들이고, 나중엔 힘닿는 대로 최선을 다했다. 기적을 바래서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나아지기 위해 보통의 부모는 상상하지도 못할 노력을 기울였다. 뇌성마비 아동은 주로 앉아서 지냈고, 간혹 허리를 굽힌 자세로 벽을 짚고 걸었다. 가족의 소원은 아이가 등을 펴고 혼자 스스로 걸을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자폐아동은 영화‘레인맨’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달력을 한번 가볍게 훑어본 후 몇 년 몇 월 몇 일이 무슨 요일인지 대번에 알아 맞추었다.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세살 때부터 글을 읽을 줄 알다보니 가족들은 천재로 알았다고 한다. 나중에 서울대병원에서 자폐장애 진단을 받고서는
차마 믿을 수가 없어서 유명 소아정신과 몇 군데를 더가봤다고 했다. 정신지체아동은 8세인데도 아직 엄마아빠를 말하지 못했다. 평생 벙어리로 사는 게 아닐까하여 아이의 할머니께서 눈물을 보이셨다. 가족의 소원은 엄마를 엄마로, 아빠를 아빠로 말해 주는 것이었다.

당시 새파랗게 젊었던 나는 걱정과 두려움, 허탈감이 녹아있는 가족들의 눈을 보면서 주눅이 들었고, 아무도 미소를 짓지 않는 분위기에 침울하기조차 했다. 이런 분위기는 3개월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知柏腎氣丸을 복용했던 뇌성마비아동 상영(가명)이는 3개월 후 척추가 60도 기울기로 전보다 조금 더 펴졌고, 벽에 손을 덜 짚고 걷게 되었다. 그러나 음악이 나오면 앉아서 몸을 들썩일 뿐 아직 서서 춤을 출 순 없었다. 다시 3개월이 지나자 이번에는 완전히 손을 떼고 걸었고, 등을 거의 반듯하게 세워서 다니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도 여전히 허리힘이 약하여 뛰진 못했다.
한약을 복용한지 1년이 되어갈 무렵 우리는 반가운 전화를 한통 받았다. 상영이가 음악에 맞춰 뛰면서 춤을 추었다고 했다. 그 후 여러 번 상영이의 춤추는 모습을 보았고, 그때의 벅찬 감격과 상영이의 미소는 훗날 한의원을 서울로 옮기는 과정에서 진로를 고민할 때 별 갈등 없이 이 길
을 선택한 원동력이 된 것 같다. 그런데 상영이가 혼자 가방을 메고 학교를 다닌지 몇 달 후에 사고가 났다. 방학이라 놀러온 사촌형과 누나가 수영장에 데리고 갔는데, 상영이가 물에 젖어 미끄러워진 타일을 밟고 뒤로 넘어진 것이었다. 119차를 타고 응급실에 도착해서 검사를 해보니 척추 5개가 골절되었고, 그 뒤 수술을 받았지만 퇴원을 하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갔다.

정신지체아동이였던 노준(가명)이는 한약 복용 후 3개월 안에 생애 처음으로 말을 시작했다. ‘엄마’라는 첫 단어의 감격이 어찌나 컸던지 알코올중독으로 간이 나빴던 노준父가 가족들 앞에서 술을 끊겠다고 선언했다! 우린 아동의 집으로 초대를 받아 가족과 함께 삼겹살을 먹었다. 방 두 칸에서 생활하는 장애아동가족의 고단한 삶속에서도 된장과 김치는 그렇게 맛이 진국이었다. 그때 한솥밥을 먹어서인지 지금까지도 노준이 가족과는 옆집 사람처럼 친하다. 노준이는 단어가 늘어가면서 후에 문장이 나왔고, 한약 복용 2년이 지나자‘이 차 선생님꺼야?’묻기도 하는 등 의문사 사용까지 적절하게 진행되었다. 말을 아주 늦게 시작하다보니 발음은 다소 부정확하지만, 말귀 알아듣는 수준은 일상생활에 별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자랐다. 한약은 3년 내내 복용했고, 지금은 고등학생이 되어 혼자 지하철을 타고 다닌다.

자폐아동이던 중구(가명)는 매달 한번씩 원인불명의 고열로 학교를 결석하고 병원에 다녔다. 수면장애가 있어서 새벽이면 잠이 깨어 집을 돌아 다니는데, 하루는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트럭에 치어 대퇴골이 세 조각으로 부러졌다. 이 때문에 밤이면 아이의 방은 밖에서 자물쇠로 단단히 잠그게 되었다. 원인불명의 열은 仁熟散을 처방했던 한약 복용 첫달부터 사라졌는데 수면장애는 3개월 즈음 되어서야 잡히기 시작했다. 모방어와 자발어가 늘고 눈맞춤도 조금씩 개선이 되더니 어느 날부턴가 이모에게 간단히 의사 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3년간 하루에 3회씩 시간 맞춰 한약을 복용시키느라 중구어머니는 점심시간이면 늘 한약을 들고 학교에 갔다. 나중에 중구의 문제행동이 줄고 의사소통이 어느 정도 되자 중구母는 직장에 복귀했다. 이젠 사진기 정면을 바라보며 여유있게 포즈를 취하고, 표정이 나보다 자연스럽다. 20대 청년인 중구는
인지와 언어수준이 좋아서 직업재활프로그램을 거쳐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2004년 경기도에서 서울로 한의원을 옮기면서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경기도에서는 80%의 일반환자와 20%의 장애아동을 진료하는 형태로 한의원을 경영했는데, 일반환자와 장애아동의 가족이 한 공간에서 진료받는 것은 양쪽 모두 불편이 따랐다.

어깨에 침맞느나 윗옷을 벗고 있는 환자의 커튼을 사정없이 열어 제치며 웃는 아이들을 상상해보라! 결국 한의원의 정체성에서부터 세부적인 인테리어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기준이 적용되려면 어느 한쪽을 포기해야 했다. 물론 2001년에 진행한 임상연구에서 일반아동의 지능 변화를 확인했기 때문에 수험생이나 강남의 학생들을 주대상으로 진료한다면 아마 상당한 부가가치가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반면 100% 장애아동 진료로 방향을 잡는다면 이미 특수교육이나 재활치료를 최선의 치료로 생각하는 기존의 인식을 깨고 시장 진입을 해야 하는 어려움이 예상되었다.

그런데 갈림길에선 우리 몇 명은 오연 오경 오지아동의 치료를 선택했다. 오늘로 4년9개월이 되었다. 加味地黃丸으로 신경세포에 대한 영향을 연구한지 8년이 지났고, 장애아동을 진료하기 시작한지는 13년이 지났다. 그동안 나 자신의 부족함과 치료의 한계 앞에서 낙담했고, 아이들이 눈에 띄게 호전되어가다가 장애인카드가 말소되는 과정을 보면서 흐뭇했다.

다른 질환에 비해 부모들의 스트레스가 워낙 크고, 진료하는 이의 고통분담 역시 적지 않지만 그러나 이길은 한의사로서의 긍지이고 보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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