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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의 특성: 발달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09-03-29 (일) 21:32 조회 : 8567

2059896961_83fa37ab_B9E9C1A6BDC5C1FDB9E6.gif우리나라에서 한의학의 기원은 단군 신화의 쑥과 마늘에서 찾을 수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한민족 고유의 본초(本草)에 대한 독자적인 전통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에는 한토의학(韓土醫學)과 불교의학의 전통 속에서 한의학의 이론적 기틀이 형성되었다. 고구려 평원왕(561년) 때 중국 의학서가 유입되었으며, 백제시대에는 의ㆍ약이 최초로 분화되었고, 독자적인 백제 의학을 형성하여 「백제신집방(百濟新集方)」이라는 우리 민족 최초의 의서(醫書)가 편집되었다.

통일신라 시대에는 수ㆍ당 의학과 인도 의술의 영향을 받으면서 독자적으로 발전했다는 것을 「신라법사방(新羅法師方)」을 통하여 알 수 있으며, 최초의 의사 교육제도와 분과제도가 형성되었다.
 
고려 초기에는 당나라의 의학적 기초 위에 아라비아인을 통하여 서구와 남방의 의약품과 다양한 의학 지식이 유입되었다. 고려 중기에는 송(宋)나라 의학이 유입되었으며, 후기로 갈수록 자주의학(自主醫學)으로 정립되었다. 특히 서민 구료 제도로 제위보(濟危寶), 동서대비원(東西大悲院), 혜민국(惠民局)을 두었으며, 이런 자주적인 기풍으로 향약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현존하는 최고(最古) 의서인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을 편찬하게 되었다.

조선 태종 시대에는 최초의 의녀(醫女) 제도가 창시되었고, 세종 시대에는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과 「의방유취(醫方類聚)」가 편집되었다. 조선 중기에는 허준의 「동의보감(東醫寶鑑)」이 편찬되어 동양의학의 커다란 업적으로 평가받고, 허임의 침구법과 사암도인의 새로운 침구보사법(鍼灸補瀉法)이 창시되었다. 19세기에 들어와서 실증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방식의 영향으로 보다 실증적인 학문이 생겨났는데, 특히 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은 사상의학(四象醫學)의 창시로서 우리나라 한의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의 한의학은 일제의 강한 정치적 규제를 받아 침체기를 맞았다. 해방과 동시에 분단된 상태에서 남한의 차별적 의료정책 속에서도 1947년 동양의학관이 세워졌으며, 1952년 한의사 제도의 부활, 1955년 동양의학대학이 설립되었다.

1952 년에 설립된 사단법인 대한한의사협회와, 전국의 11개 한의과대학(2002년 현재, 6년제)에서는 한의사와 한의학 및 한의약에 관련된 정책 및 학술연구를 하고 있고, 많은 학회활동과 국제의료봉사활동 등을 하고 있다.

대한한의사협회는 독립적인 한의약법 제정을 건의하고 있으며, 21세기를 주도할 수 있는 한의학 발전 대책을 구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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