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명인물 ① 왕유릉화(王有陵陀) 백제의 내솔(奈率:6品) 의박사(醫博士)로서 일본 흠명주(欽明主)의 청빙(請聘)에 의하여 554년(위덕왕(威德王) 32, 일본 흠명주(欽明主) 15)에 백제로부터 일본에 건너갔다
② 금파진한기무(金波鎭漢紀武) 414년(신라 실성왕(實聖王) 13, 일본 윤공주(允恭主) 3)에 일본 윤공주(允恭主)가 병이 있어 양의(良醫)를 신라에서 구하므로 일본에 건너가 병을 치료해 주고 후상(厚賞)을 받고 돌아왔다.
③ 지총(知聰) 중국 오(吳)나라 왕(王)인 소연(昭淵)의 아들이다. 그는 고구려 평원왕(平原王) 3년(561년)에 내외전(內外典), 약서(藥書), 명당도(明堂圖) 등 164권을 가지고 일본에 들어가 귀화하였다고 『일본서기(日本書記)』에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은 의학사에서 최초로 일본에 의서가 전달되는 기록이라는 데에 의미가 있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그는 본래 중국인이었지만 여러가지 정황으로 보아 이미 고구려에서 오랜 기간 귀화한 상태에서 생활한 것으로 보인다.
④ 김영석(金永錫:1079-1166) 김영석(金永錫)은 당대 최고의 관직을 두루 섭렵하면서 정치가로서의 입지가 두터웠지만 의학에도 깊은 조예가 있었다. 그의 저술 『제중입효방(濟衆立效方)』은 신라와 송나라의 의서들을 참조하여 만든 것으로 이전까지 한국에 존재했던 처방들을 정리한 것이다.
⑤ 최종준(崔宗峻) 최종준은 고종대에 다방(茶房)의 약방(藥方)에다 다시 긴요한 처방을 첨부하여 ??신집어의촬요방(新集御醫撮要方)?? 2권을 편찬하였다.
⑥ 유효통(兪孝通) 1431년 노중례(盧重禮) 등과 함께 『향약채취일령(鄕藥採取月令)』,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을 편찬하였다.
⑦ 양예수(楊禮壽:?-1600) 고려 때 원나라에서 귀화한 양기(楊起)의 9세손이다. 의관출신으로서 경기도 부평부사(富平府使)를 지내기도 하였고 관계(官階)가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이르렀고, 광원원종공신(光國原宗功臣)으로 공훈을 세웠으며 뒤에 『동의보감(東醫寶鑑)』의 선집(撰集)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그는 정경선(鄭敬先)이 지은 『의림촬요(醫林撮要)』를 교정하였다.
⑧ 허준(許浚:1539-1615) 조선 중기의 의학자로 본관은 양천(陽川), 호는 구암(龜巖)이다. 그의 할아버지 곤(琨)은 무과출신으로 경상도우수사를 지냈고, 아버지 론(?)도 무관으로 용천부사를 지냈다. 그는 내의원에 근무하면서 내의, 태의, 어의로 명성을 높였고, 『동의보감』을 지었다.
⑨ 이산(李?: 1752-1800) 조선 제22대 왕인 정조이다. 『홍제전서(弘齋全書)』라는 이름으로 1814년에 간행된 184권에 달하는 문집에는 『수민묘전(壽民妙詮)』이라는 의서가 들어 있다. 강명길(康命吉:1737-1800)은 조선 영조-정조년간에 활동한 의사이다. 정조 18년 11월에 수의로서 왕을 진찰하였고, 23년 12월에 『제중신편(濟衆新編)』 8권을 편성하였다.
⑩ 유성룡(柳成龍:1542-1607) 조선중기 재상 출신으로서 『의학입문(醫學入門)』의 침구편(鍼灸篇)에 나오는 내용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시작하여 말년에 『침구요결(鍼灸要訣)』이라는 침구학 서적을 저술하였다.
⑪ 허임(許任:1570-1647) 조선 중기에 침의(鍼醫)로 근무하면서 침구학 관련 연구를 많이 하였다. 1644年(인조 22년)에 『침구경험방(鍼灸經驗方)』을 저술하여 간행하였다. 이 책은 조선 침구학을 총정리한 명저로 꼽힌다.
⑫ 임언국(任彦國) 명종 때 활동한 치종의(治腫醫)이다. 명종 14년(1559)에 『치종비방(治腫秘方)』이라는 서적을 간행하는데, 이 책에서는 화정(火丁), 석정(石丁), 수정(水丁), 마정(麻丁), 루정(縷丁) 등 오정(五丁) 및 배종(背腫) 등 종기들을 증상, 치법, 약물 등과 함께 설명하고 있다.
⑬ 이정집(李廷輯) 조선 후기 정조 때에 궁중에서 어의로 활동하면서 『유유집성(幼幼集成)』(1781년 간행)이라는 소아과 연구서를 내었다.
⑭ 유이태(劉以泰:1652-1715) 유이태(劉以泰)의 『마진편(麻疹篇)』은 홍역전문치료서적(紅疫專門治療書籍)으로서 그가 의원(醫員)으로 있으면서 마진(麻疹)을 치료한 40여년간의 경험을 기록한 서적이다.
⑮ 정약용(丁若鏞:1762-1836) 의학에 뛰어났던 유의(儒醫)로서 『의령(醫零)』, 『마과회통(麻科會通)』을 지어 당시 의학적 수요에 대응하였다. 『마과회통(麻科會通)』은 1798년 이몽수의 『마진방(麻疹方)』을 중심으로 당시 우리나라에 수입된 많은 중국의 마진전문 의서들을 참고하여 마진의 치료법을 다루고 있는 서적이다.
? 이제마(李濟馬) 1836년에 함경남도 함흥에서 출생하였다. 청년시절 유랑하다가 김기양의 추천으로 무과(武科)에 등용되어 진해현감을 제수하고 병마절도사에 임명(50세)되었다. 만년에는 관직을 버리고 함흥에서 보원국(保元局)이라는 한의원을 경영하면서 제자들을 양성하였다. 저서로는 『천유초(闡幽抄)』『제중신편(濟衆新編)』『광제설(廣濟說)』『격치고(格致藁)』『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이 있다.
? 황도연(黃度淵:1807-1884) 『부방편람(附方便覽)』28권, 1868년(고종 5년)에 『의종손익(醫宗損益)』12권과 『의종손익부여(醫宗損益附餘)』1권, 그 다음해에 『의방활투(醫方活套)』1권을 간행하여 활발한 저술활동을 벌였다. 그는 77세(1884년)에 그의 아들 황비수(黃泌秀)에게 명하여 왕인암(汪?庵)의 『본초비요(本草備要)』『의방집해(醫方集解)』를 합편한 법을 모방하여 『의방활투(醫方活套)』에 『손익본초(損益本草)』를 합하고 다시 여기에 『용약강령(用藥綱領)』과 『구급(救急)』『금기(禁忌)』등 10여종을 보충하여 『방약합편(方藥合編)』이라는 서적을 편술하도록 하였다. 이 책은 그가 죽은 후에 출간되어 세상에서 빛을 발하게 되었다. 이 책은 특히 조선 말기 한국의 한의학을 대표하는 대표적 서적으로 이름이 높다.
? 이규준(李圭晙:1855-1923) 『황제소문절요(黃帝素問節要)』(일명, 『소문대요(素問大要)』), 『의감중마(醫鑑重磨)』등 의서들을 저술하여 부양론(扶陽論), 기혈론(氣血論), 신유양장변(腎有兩藏辨) 등의 세 논문을 통해 새로운 학설을 주장하였다.
? 한병연(韓秉璉) 1914년에 『동의보감(東醫寶鑑)』을 요약하는 형식으로 만들어진 의서로, 상편, 중편, 하편으로 구성된 『의방신감(醫方新鑑)』을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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