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및 관련산업의 전망 (1)한의학의 전망 한의학은 우리민족의 반만년 역사와 함께 한 우리 고유의학으로, 중국과의 교류를 통하여 끊임없이 발전하였다. 우리의 약재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질병을 고치면서 향약집성방과 동의보감이 탄생되었으며, 사상의학 등 높은 수준의 고유한 전통을 가진 창조적 의학으로 발전해 왔고, 자연치유의학으로 예방과 치료를 병행한 수준 높은 의술로서 인정받고 있다. 흔히들 한의학을 경험의학이라고 말하지만 한의학은 생명의 탄생과 더불어 자연의 이치에 의해 만들어진 철저한 이론이 반영된 의학이다. 한의학은 인체를 소우주로 해석하여 생명 에너지의 흐름을 통하여 질병을 진단하고 이를 통해서 처방과 치료기술이 나오는데 반해, 서양의학은 증상에 따른 표증치료 위주의 의학이다. 서양의학에 비해 한의학이 이런 오해들을 사고 있는 이유는 현재 분석과학 기술 수준이 입증하기에는 한계가 있기에 검증되지 않은 신비주의 의학으로 비추어지고 있다는 것이 보다 정확한 해석일 것이다. 개화기에 서양 문물이 우리나라에 수입된 이후 정신적, 문화적으로 종속되면서 서양의학에 밀려 몇 십년간 민간요법 수준의 의학정도로 전락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한의사들의 많은 노력과 정체의학과 자연요법을 중시하는 서양의 조류에 편승하여 다시금 각광을 받고 있다. 그 배경에는 한의대의 설립을 통한 학문적 체계 확립과 한약의 대중화, 각 전문 치료 과목별로 특화된 치료법의 개발, 첨단 진료장비를 이용한 질병진단, 전탕방식에서 벗어난 다양한 제형변화(증류, 산제, 캡슐, 농축 등)와 외용 치료제의 개발(아토피로션, 스킨, 입욕제, 각종 피부연고류, 비염?축농증 치료제 등)과 생명공학분야 연계한 활발한 연구 활동 등을 통하여 다양한 연구결과물들이 그를 뒷받침하고 있다. 앞으로 한의학이 현대과학 및 문화와 어울려 어떻게 발전하고 진화해나갈지를 몇 부문으로 나누어 진단해보기로 한다. (2) 한방산업의 전망 바이오산업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중요한 산업 동력임이 확인되면서 최근 IT, NT, ET 등 기술간 융합과 화학, 식품, 농업, 환경, 에너지, 전자 등 전통산업과의 접목으로 새롭고 다양한 신산업이 지속 창출되고 있는 추세이다. 특히, 우리 고유의 전통한방을 바이오산업과 접목한다면 그 특성이 친환경적이고 생명공학적인 고부가 가치 산업으로 창출되어 기존 전통산업이 지니고 있는 생산성과 효율성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선진국가들과의 BT산업 경쟁력에서는 한국이 열세에 있지만 한약재를 원료로 하는 한방바이오산업은 중국과 더불어 한국의 경쟁력이 매우 높다고 볼 수 있으며 자연재배의 한약재 원료에 의한 제약, 식품, 화장품산업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실험실 연구에 의한 화학제품 산업과 달리 우리나라의 한방 BT 산업에서의 비교우위는 상당히 오래 지속될 수 있다. 한국에서는 2003년 한의약육성법이 제정, 공포됨에 따라 한의약 육성, 지원을 위한 관련제도, 정보, 인력, 시설 등 인프라를 구축하고 국민의 건강증진 욕구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한방의료 서비스의 수준을 제고하는 한편, 한방의 과학화, 대중화, 세계화를 통하여 한의약 분야를 고부가가치산업으로 육성시켜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고 국민경제의 성장엔진 역할을 수행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또한, 무역개방 기조를 중심으로 세계화가 진행되어가고 있고 세계화로 인해 경제의 국경이 사라지고 정보통신 기술 등 현대적인 커뮤니케이션의 발달로 공간적 한계를 극복하게 됨에 따라 세계화된 새로운 세상에서 지역적인 가치는 더 부각되게 된다. 구미에서는 대체보완의학의 일환으로 한방산업에 대한 관심이 국제적으로 증가일로에 있으며 미국은 국립보완대체의약센터를 통해 수억 달러의 연구비를 지원하며 한방에 관한 연구를 본격화하고 있으며 미국인 중 70%가 침술 등 한방관련 처방을 받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게다가 사스, 조류독감 등의 여파로 인체의 면역력 향상에 효과가 있는 한방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이 증가됨에 따라 아시아의 한방관련 업체의 주가가 월스트리트에서 급등하며 투자가 확대되기도 했다. 세계 한방관련 산업의 시장규모는 1998년 490억 달러, 2000년 850억 달러, 2004년 1000억불 이상으로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미국의 대체의학 시장만도 1997년 270억불 등으로 성장한 예를 볼 때 한방자원을 기반으로 한 대체요법과 자연치료의학을 이용한 의료는 세계적으로 경제 성장 동력이 될 전망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중국약재의 시장점유율이 압도적이지만 한국 정부에서도 생명공학 산업을 21세기 첨단 산업으로 육성하고 우리 고유의 한방바이오 산업으로 연계하기 위한 다양한 지원과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향후 한약재를 이용한 신약개발, 식료품, 건강기능식품 개발, 다양한 한방치료 기술을 이용한 의료산업, 의료 기기 뿐 아니라 문화로서의 한의학을 이용한 관광산업, 웰빙산업 까지 연계시킨다면 그 부가가치 창출은 극대화 될 것이다. 한국의 한방산업에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첫째, 한방의 고품질화, 표준화, 규격화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실험실 단계에서의 GLP 기준, 제조 단계에서의 GMP 뿐만 아니라 한약재 생산 단계에서의 기준 등이 합리적으로 정비되어야 한다. 둘째, 한방산업육성을 위해서는 클러스터 관점에서 접근이 필요하다. 한약재 생산, 유통, 한방제품의 연구개발, 제품시험, 제조, 마케팅 등의 활동이 유기적으로 연계될 수 있는 네트워크체계 구축이 필수적이다. (3) 새로운 진단기기의 전통의학적 활용 한의학에서 진단하는 방법에는 望, 門, 問, 切 하는 방법 이외에도 여러 가지 현대적인 장비가 동원된다. 적외선 체열진단기는 인체에서 방출되는 극미량의 적외선을 감지하여, 인체의 통증부위 및 질병부위의 미세한 체열변화를 컬러 영상으로 나타내줌으로써, 인체의 이상 유무와 질병여부를 진단할 수 있게 해준다. 신경계 질환이나, 근골격계 질환 등에 응용할 수 있으며, 비침습적으로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이다. 컴퓨터 사상체질 감별기는 각 체질을 판별하고 체질별 발병 원인을 추정할 수 있게 해주는데, 예를 들어 소음인 체질이라면 기 순환 장애나 자궁의 부실로 요통이 많이 온다거나 소양인은 약한 신장 기능이 허리에 영향을 준다든가 하는 체질별 원인을 파악하는데 도움을 준다. 양도락 측정기의 원리는 인체에서 전기가 잘 흐르는 양도점을 연결한 양도락을 응용한 것인데, 인체에 약한 전류를 흘려주면 피부의 통전 저항의 크기에 반비례해서 전류량이 나타나게 된다. 이 전류량이 양도락 측정기에 나타나는 수치이며 인체가 외부로부터 들어온 전류에 대해 가지는 피부통전 저항이다. 양도락은 자율신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내장의 변화가 체표의 지각신경, 운동신경, 자율신경으로 반영이 되어 일련의 신경기능의 변동을 전기적 현상을 이용해 내장 기능의 상태를 진단할 수 있다. 또한 중풍을 진단하기 위한 한방검사에는 경락기능검사와 맥파 검사, 맥진기 검사 등이 대표적이다. 경락기능검사는 인체의 바이오리듬을 분석해 자율신경계의 균형 상태와 신체활성도를 평가하여 노화정도와 스트레스, 대뇌활성도를 측정할 수 있다. 맥파 검사는 혈류 흐름을 파악해 심박출 강도와 말초혈관의 탄성도 등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혈관연령을 산출해 동맥경화나 혈관의 노화정도를 예측하며 고혈압이나 심부전 등의 혈관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 맥진기 검사는 한의학의 맥진을 첨단 전자 장비를 이용해 그래프로 나타낸다. 인체의 기와 혈의 조화를 파악해 오장육부의 기능적인 이상 유무를 측정한다. 오른손 식지 끝에 센서를 설치해 주파수를 분석하는 '수양명경 경락기능검사'는 자율신경계의 조절능력과 균형 상태를 확인할 수 있으며 혈관의 탄력도와 노화도를 측정해 중풍을 예방할 수 있다. 이 외에도 홍채진단기를 통해 홍채에 나타난 변화를 보고 장기나 기관의 변화를 판독하여, 각 장부 및 기관의 건강상태를 진단하기도 하며, 자율신경균형검사, 말초혈액 순환검사에 등으로 심 혈관계질환을 예측하고 자율신경계 균형 정도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체성분 검사기는 체내 체지방량 및 근육량 등을 나타내어, 비만진료에 잘 이용되는 진단기기이다. (4) 한방의료기관의 특화 전통의학 시장이 커지고 경쟁도 심화됨에 따라 한방의료기관의 전문성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2002년부터 한방내과, 침구과, 한방재활의학과, 한방부인과, 한방소아과, 사상의학과, 한방안이비인후피부과, 한방신경정신과 등 8개 과의 한방전문의가 배출되기 시작하였고 한의학의 특성을 잘 살릴 수 있는 몇몇 질환 들을 중심으로 진료하는 특화된 한방의료기관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중풍, 비만, 추나, 체질, 불임, 음악치료 등을 특화한 대학 및 중소 한방병원들에서의 전문적인 임상경험 축적은 학회를 통한 연구 성과로 이어졌다. 잠정 보류되었지만 정부는 ‘제1차 한의약육성 발전 5개년 종합계획’의 일환으로 중풍, 척추, 당뇨, 산재, 노인, 소아, 부인병 등 특정 전문 진료를 활성화시킨다는 취지의 한방의료기관의 전문병원제도 도입을 시도한 바가 있다. 한의과대학 부설 한방병원들은 관절염, 두통, 사상의학, 알레르기, 호흡기질환, 중풍, 암센터, 화병·스트레스클리닉, 소아청소년클리닉, 한방음악치료센터 등의 특화진료실을 통해 다양한 한방진료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최근 임상가에서도 비만, 성장, 척추, 축농증, 아토피, 홧병 등 기존에 효과가 잘 알려져 프렌차이즈 된 영역 외에도 해독, 자연요법, 탈모, 미용, 난청, 당뇨 등을 특화하는 한의원이 늘어나고 있다. 특화 진료와 더불어 약침요법, 안면침요법, 발효한약, 진공증숙기 등 질 높은 의료상품이 개발되어 보다 경쟁력 있는 의료서비스를 공급하고 있다. 최근들어 중소병원들은 경영난을 해소하기 위한 대안으로 특정질환에 대한 전문 병원화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고 한의원의 경우도 의료기관으로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백화점식 경영에서 특정질환에 대한 차별화된 전문 의료기관으로 경영개선을 강구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거대한 외국자본을 앞세워 국내의료기관 잠식이 예상되고 의료기관의 포화상태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상황은 의료기관의 특성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진료특화가 그 자체로서 훌륭한 구상이지만 경영난 해소라는 협소한 전략보다는 전문인제도를 망라한 법적·제도적 종합대책이 수립될 때 영속성 있는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다. (5) 한약제형의 다양화 현재 한방의료에서 적용되고 있는 대부분의 제형인 탕제는 탕제를 제조하는 과정의 표준화 및 균일화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로 이한 품질은 물론 약효의 재현성 확보가 곤란하다고 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더욱이 보관과 저장은 물론 한약 고유의 맛과 향 등에 의해 복약순응도가 낮아져 치료의 질적 저하가 초래되는 우려도 있다. 서양의학의 정제된 약물과는 달리 한방약물은 천연물을 기원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품질의 균일성은 물론 안전성 및 안정성 확보에 다소 어려움이 있다. 이 뿐만 아니라 한방약물의 전통적 제형은 사용 및 보관에 있어 편리성이 결여되어 복약 방식을 잘 지키지 않는 등 단점이 있어 보편화 및 대중화에 장애가 되는 측면이 있다. 따라서 한방의료에서 활용되고 있는 탕약, 환제, 산제, 고제 등 제형을 보다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개변하여 품질의 균일성은 물론 복약순응도를 높일 수 있는 제형개발이 필요하며 관련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최근 엑스제, 캡슐제, 연고제 등의 제형개발이 되고 있지만 널리 보급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급속히 변화하는 의료환경에서 한방의료가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환자들을 소비자로 인식하고 이들의 욕구를 정확히 파악하여 그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신 치료법의 개발과 다양하고 효율적인 약물요법을 행할 수 있는 약제 개발이 선행되어야 한다. 한방의료에서 과거와 현재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탕제는 필요시에 달여 복용하므로 신선하고 흡수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지만 매번 달여 복용해야 하는 점은 바쁜 현대인들에게 한방의료를 기피하게 하는 원인이 되며 탕전의 전문성 및 숙련도와 전탕시간에 따라 탕액의 품질 균일성 확보가 어려워 약효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또한 부피가 크고 휴대가 불편해 복약순응도가 낮고 한 번에 달여 장기간 복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필요시에 순발력을 발휘하기가 어렵다. 한편 한약 특유의 쓴맛과 냄새로 소아나 젊은 층, 외국인들이 복용하기에는 적절치 못하고 사회생활을 하는 환자들은 주변을 의식하여 복용을 기피하기도 한다. 실제 한방의 치료효과를 인정하면서도 이러한 복용상의 문제로 한방치료를 꺼리거나 복용을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한약이 대중적인 치료제로 이용되지 못하는 원인 중의 하나이다. 한방의료기관에서도 탕제는 조제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제제화의 표준화 및 균일화 등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전문성 등이 결여된 측면이 많다. 최근에는 탕제를 대신할 새로운 제형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고 실제 한방에서는 처방에 따라 배합한 약재를 분무건조법이나 동격건조법 등을 이용하여 건조시킨 엑스분말을 원료로 하여 과립제, 정제, 캅셀제, 연고제 등을 개발하여 이용하고 있으며 앞으로의 활용도가 높아질 것이다. 이는 또한 한약의 대중화와 보편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6) 한의학의 과학화와 근거중심의 한의학 한의학은 인간을 전인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건강을 증진시키고 질병을 예방하며 치료하고 후유증을 최소화하고자하는 의학의 한 형태로서 기존의학과 더불어 또 다른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한의학에서 사용되는 많은 방법들 중에서는 치료효과가 뛰어난 것들이 많이 있으며 이러한 것들이 아직 증명되지 않았거나 다소 이해하기 어렵다고 해서 묻히거나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적극 발굴하고 연구하여 유용하게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인류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과학적 연구대상으로 포함시켜야 하며 현재 의료계에서 쓰이고 있는 많은 치료 들이 민간요법이나 전통의학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통해서 발견되었고 역사적으로 생성 및 발전을 거듭하여 왔다. 한편, 한의학의 사회적 영향력이 증대하고 제도화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한의사들은 전통적 철학과 이론에서 벗어나 과학화를 추진하고 있다. 한의학을 세계화해야 한다는 인식도 작용하고 있고, 다른 한편 국내적으로 의료산업 모형이 한방의료계에도 도입되면서 탈이론화, 과학화, 상업화의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종종 분석화학적인 약리작용 기전은 불분명하지만 임상적 효과는 분명하게 나타나는 사례에 접할 수 있다. 인삼의 경우가 그러하고 침술의 경우가 그러하다. 인삼의 화학성분을 분석하여 왔지만 임상에서 나타나는 효과를 충분하게 화학적 분석을 통하여 밝혀주지는 못하고 있다. 침술의 경우도 유사하다. 미국의 NIH는 침술의 효과를 검증하기 위하여 전문가 패널을 구성하고 1970년부터 1997년까지 발표된 관련논문 2,302개를 검토하였다. 그 결과 adult postoperative & chemotherapy nausea & vomiting과 postoperative dental pain에서만 효과가 입증되었다. 그리고 addiction, stroke, headache, menstrual cramps, tennis elbow, fibromyalgia, myofascial pain, osteoarthritis, low back pain, carpal tunnel syndrome, asthma 등에 “효과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추정하였다. 이것은 침술효과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는데 있어서 위약효과를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보다 많은 증거가 검증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침술의 작용기전은 불분명한 상태로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서구사회에서 의사들이 침술을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방 의료의 많은 부분은 현재 분석 과학적으로 작용기전이 밝혀지지는 않지만 효과는 있는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원인과 결과의 사이가 복잡하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인과성을 충분히 입증하기 어렵지만 인과관계는 존재한다. 과학적 검증이 필요한 것은 의학이나 한의학이나 마찬가지이다. 다만 성분분석적인 방식으로 검증이 안 되기 때문에 비과학적인 것으로 볼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한의학에 대하여 분석과학적인 방법을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오류이다. 분석 과학적 방식의 검증을 할 수 있는 부분은 치밀하게 수행해야하지만 ‘과학성’입증에 있어서는 보다 열린 자세로 임해야 한다. 과학의 원리를 넓게 받아들인다면 과학화를 위한 노력이 방법상의 일정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 기본적인 원칙에서는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이 기본적으로는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서양의학계의 광범위한 인적 물적 자원과 결합되어 과학적 검증 노력이 이루어진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7) 한의학의 표준화와 공공의료에의 참여 자본주의의 발전과 세계화의 진행으로 만성퇴행성 질환, 스트레스성 질환, 사고와 중독 등의 문제를 갖게 만들며, 이를 치료하는데 필요한 서양의학적 자원의 부족 또는 비용의 증가를 초래한다. 그리고 그 결과 한편으로는 의료개혁을 통하여 의료체계를 합리화 또는 시장화할 것을 요구하게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보다 저렴한 대안을 추구하게 만듦으로써 전통의학이 그 역할을 수행하게 만든다. 대개의 국가들이 과거와는 달리 전통의학과 대체의학에 정책적 관심을 보이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경제, 사회구조의 변화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런데 전통의학에 대한 국가개입이 증가하게 되면 전통의학은 일정하게 내부구성을 합리화할 필요가 있게 된다. 예를 들어 국가적 차원의 의료계획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전통의학도 임상역학적 연구를 통하여 시술과 치료법의 효과에 대한 객관적인 데이터를 만들어내야 하고, 사회의 다른 부분과 의사소통을 증진시키고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수준에서의 과학성도 입증 받아야 한다. 이러한 세계적 수준에서의 전통의학의 제도화를 위해서 전통의학은 교육체계와 시술체계는 물론 텍스트의 내용과 용어의 사용까지 지역성을 넘어서 세계적 ‘보편성’의 기준에 맞추어야 하는 과제가 제기된다. 이러한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전통의학은 ‘지역성’(locality)에 내포되어 있는 독자적 역사, 이념과 방법과 용어가 어느 정도 탈색될 수밖에 없고 그것은 전통의학의 고유성을 잃을 수도 있는 문제가 되기도 하므로 신중히 진행되어야 한다. 최근 일본에서는 미병(未病)이란 말이 1997년 후생백서에 수록된 이후 의료계에서 유행하고 있다. 미병은 질병의 전단계 상태로 이를 방치하면 질병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러한 용어가 유행하게 된 배경에는 일반인의 주체적인 건강관리와 병자의 적극적인 참여로 미병상태를 사전에 치유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현대의 건강개념에 기인한다. 한의학은 미병단계에 대하여 특별한 이론과 대처방법을 갖고 있지 못한 서양의학적 접근에 비하여 체질에 따라 예상되는 질병군에 대처할 수 있는 건강법을 제시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유용성이 있다. 달리 표현하자면 현대 의학은 감염증대책 등과 같은 일종의 대량생산 방식으로 볼 수 있는데, 21세기 사회는 衣食住는 물론 건강과 의료의 욕구도 기본적인 것은 충족됨으로써 환자 개인의 특성과 요구에 따른 보다 높은 질의 수요가 요구되고 있는 상황에서 동양의학이 이론은 소량다품종식 진단과 치료방법을 만드는데 더 유리한 점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21세기 사회상황에 적합한 한의학의 역할을 규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전통의학이 미병과 건강관리를 담당하기 위해서는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이 개발되어야 하고, 그것이 효과적임을 의학적으로 입증함과 동시에 경제적인 비용효과 역시 증명되어야 한다. 현대 선진국의 의료제도의 중요한 특징은 과거 각기 분리되어 존재했던 보건, 의료, 복지의 세 영역이 하나로 통합되어 서비스가 제공되는 추세로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는데 이것은 특히 노인의료 문제가 심각해지면 두드러지고 있다. 노인들이 갖는 문제는 만성질환 치료뿐만 아니라 치매 등과 관련한 장기적인 요양의 필요성과 신체적 정신적 기능저하로 인한 일상생활의 어려움, 수입원의 감소에 따른 경제적 궁핍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이에 따라 기존의 병원들은 이제 양로원, daycare center, 가정개호서비스 기관 등을 부설하여 보건의료복지를 하나로 아우르는 시스템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러한 추세 속에서 한의학계에서 건강·미병 관리, 침구를 이용한 신체적 정신적 기능강화와 이를 통한 삶의 질의 향상 같은 개념들을 정립하고 구체적인 시술법들을 적용해 나감으로써 21세기라는 새로운 사회경제적 상황에 적극적으로 적응하고 고비용의 서양의학 중심체계에 대한 대안과 협력을 모색함으로써 전통의학의 활로를 찾으려고 시도한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 새로운 건강문제에 한의학의 역할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그리고 한의학적특성과 서양의학적 특성을 어떻게 조화시키고 특성화시킬지에 대한 이론적 모형을 갖추고 그에 맞게 진행되어야 한다.
(8) 서양의학의 대안으로서의 한의학 21세기에 요구되는 바람직한 세계(미래)의학상은 상위 개념에서는 ‘융합의학’을 목표로 하면서 하위 개념에서는 지금까지의 인류가 개발한 여러 가지 형태의 ‘다종의학’을 조화시켜 ‘새로운 의학(신의학)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21세기에 동양의학이 서양의학에 대해 할 수 있는 역할은 건강개선 보다는 질병치료에 초점을 맞춘 주류의학의 ‘인간성상실’에 대한 ‘파수꾼’으로서의 역할이며, 둘째, 지금까지 병원균과의 ‘투쟁’으로만 이끌어온 치료방법을 ‘조화’라는 ‘내공생(endosymbiosis)’으로 바꾸도록 하는 의식전환의 역할이다. 죽은 몸을 살아 있는 몸으로, 질병중심에서 건강중심으로, 치료의 개념에서 관리(양생)의 개념으로 사고를 전환하도록 하는 중추적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교과 과정에서는 의철학, 의과학, 과학철학, 의학사상, 의학윤리(생명윤리) 등과 같은 기초학문이 중시되어야 할 것이며, 의학개론, 생리학, 병리학 등을 통합한 기초의학이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그동안 서양의학이 쌓아온 과학적 지식 및 기술 또한 중시되어야 한다.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친 편식적 학문 경향은 배제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동양의학 교육에서는 실험위주의 교육만이 전부가 아니며(물론 실험교육도 필요하다), 기술만을 능사로 한 교육 또한 만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이론·기술·실험이 균형적으로 발전 할 수 있는 교육이 되어야 할 것이다.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보면 의학과 한의학이 서로 접근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의사나 한의사 모두 진정으로 ‘하나 되는 의학’의 필요성에 공감한다면 차이보다는 공통점을 부각시키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 두 의학 사이에 공통적인 부분을 밝히려는 노력이 선행된다면 이것은 서로의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타 문화를 이해하거나 수용할 때 중요한 것은 인류적 보편성을 찾는 것이다. 사랑이나 우정 같은 가치는 대개의 문화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지만 그것을 표현하고 실천하는 방식은 매우 상이할 수 있다. 이것을 문화의 다양성이라고 한다. 따라서 실천방식의 차이에 주목하기보다는 그것이 함유한 보편적 가치에 주목할 때 우리는 타 문화를 이해하고 타문화와 쉽게 공존할 수 있게 된다. 문화의 다양성을 생각한다면 서로를 포용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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