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광복 78주년을 맞이해 일제강점기 전통의학 차별에 맞서 투쟁을 이끈 한의사들의 독립운동 역사를 되짚어보고 그 공적을 상세히 조명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홍익표·이철규·윤주경·민형배 국회의원, 대한한의사협회, 대한학술원이 공동 주최하고, 국가보훈부와 광복회가 후원아래 10일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대한민국 국권 회복과정과 한의사의 독립운동’을 주제로 개최됐다.
홍주의 대한한의사협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반만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 동안 우리 민족의 생명을 지키고 상처를 치유해온 한의학은 일제강점기에 한민족의 얼을 말살하려는 ‘민족문화말살정책’으로 인해 억압과 고통의 시간을 보냈지만 민족의 의학인 한의학을 수호하고 계승한 한의사들은 일제의 억압에 굴하지 않고 교육과 의병활동, 독립운동 등 다방면에서 항일투쟁에 앞장섰으며, 그 결과 한민족과 한의학을 지키고 마침내 광복을 이뤄낼 수 있었다”고 밝혔다.
홍 회장은 이어 “일제강점기에 이식된 양방 위주의 의료제도와 양방 일변도의 정책으로 인해 한의학과 한의사는 여전히 진정한 광복을 맞이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한의학이 국민의 건강증진과 삶의 질 향상에 더 큰 기여를 할 수 있도록 이제라도 잘못된 제도를 바로잡아야 할 것이며, 일제강점기 한의사의 독립운동을 돌아보고 현재를 반성하며 미래를 설계하는 첫발을 내디뎌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홍익표 의원(더불어민주당·서울 중구성동구갑)은 “일제강점기 차별과 의료자격 상실로 비밀리에 활동해 기록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한의사 독립운동가들이 많다”며 “2020년 신홍균 선생에게 건국 훈장 애족장, 2022년 신광열 선생에게 독립 유공자 대통령 표창이 서훈되면서 한의사 출신 독립운동가들이 발굴된 것처럼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한의사 출신 독립운동가들이 조명받고 발굴되길 희망한다”고 전했다.
독립운동가 윤봉길 의사의 손녀인 윤주경 의원(국민의힘·비례대표)은 “한민족의 전통의술로 치료를 하던 한의사들이 자발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한 것은 세계사적으로도 보기 드문 일”이라며 “조선총독부에 의해 ‘의생’으로 격하되어 의사 자격을 박탈당하고, 일제에 의해 끊임없이 혹독한 탄압을 받으면서도 한의사들은 전통의술을 포기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민족의학을 지키는 숭고한 정신으로 민족을 구하는 일에 앞장섰다”고 말했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한의사들의 독립운동 정신은 민족정신”이라면서 ‘국사(國史)가 망하지 않으면 국혼은 살아 있다’는 박은식 선생님의 말씀처럼 한의사들의 민족정신을 기억하고 되새기는 것은 학술적 차원을 넘어 국혼을 보존하고 계승하는 일”이라면서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우리 겨레의 유산을 기억함과 더불어 다음 세대를 위해 한민족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미래 세대가 기억하고 계승해야 할 투쟁의 역사를 되새기자”고 강조했다.
이날 학술대회는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장세윤 수석연구원이 ‘광주학생 독립운동과 1930년 초 중국 연변(북간도) 항일 운동을 주제로 기조강연을 진행했으며, 제1세션(독립협회 이후 대한민국 100년의 궤적)에서는 △이승만의 탈중화 사상과 대한독립운동-청일전쟁의 영향과 옥중저술을 중심으로(발표:연세대 김명섭/토론:인하대 김대호) △전통의학 차별에 맞선 한의사들의 항일운동(발표:인하대 정상규/토론:고려대 이용욱) △대한민국 정체성 형성 과정의 안티테제 논박(발표:연세대 이승종/토론:이화여대 박원곤) 등의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제2세션(한의사의 한국독립운동)에서는 △한말 한의사의 의병 전쟁 참여 양상(발표:국민대 김성민/토론: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소 박민영) △한의사의 3.1운동 참여와 의의(발표:충남대 이양희/토론: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원 최우석 연구원) △일제강점기 한의약계의 항일투쟁 유형과 성격(발표:서대문형무소역사관 박경목 관장/토론:단국대 박성순) △1920년대 항일무장투쟁을 이끈 의생 출신 독립투사들(발표:김명섭/토론:희산김승학선생기념사업회 김병기) 등이 진행됐다.
이중 ‘전통의학 차별에 맞선 한의사들의 항일운동’을 주제로 발표한 정상규 태평양포럼 연구원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했지만 그동안 크게 조명 받지 못했던 한의계 독립운동가들을 소개해 참석자들의 높은 관심을 받았다.
정 연구원은 "한의사들이 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는가라는 물음에는 첫째로 일제강점기에 한의사들은 민족말살정책의 희생양으로 의생으로 격하되는 차별을 겪었고, 둘째로 한약국이나 한약방 등에서 약을 지어주면서 비밀리에 독립운동 자금을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등 한의사만이 할 수 있었던 독립운동의 방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연구원은 이어 "이렇듯 독립운동에 뛰어든 한의사가 분명 적지 않았음에도 아직까지 크게 조명받지 못한 경우가 많다"며 "상해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며 의열단을 직간접적으로 돕는 역할을 했으며, 해방 이후에는 한의사 면허와 한의과대학 설립 등에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이며 초기 한의사 면허를 심사하는 역할을 하는 등 한의사 제도와 면허를 만드는데 기여했던 의생면허 방주혁 한의사와 연해주에서 노인동맹단 창설해 단장으로서 강우규 한의사를 영입하고 함께 활동했던 김치보 한의사 등은 아직까지 독립운동가 서훈도 받지 못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한의사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은 독립운동의 발전과 성공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의료 전반에 걸쳐 국민의 의료 수준 향상에 기여했지만, 아직까지 그들의 공적을 발굴하거나 연구하는 것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이러한 연구가 역사학계와 한의계 전체로 확대된다면 한의사 출신 독립유공자들을 발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김성민 국민대 교수는 “한의사들은 의병장으로 거의하거나, 의진의 주요 참모로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며 “식자층이었으므로 의진 내에서 주요한 직책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당시 의병관련 기록에 농업 또는 양반으로 표기되었으나 실제로는 개업하지 않은 유의(儒醫)로서 의진 내에서 의료행위를 한 경우도 있어 확인되는 수보다 훨씬 더 많은 한의사들이 의병전쟁에 참여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박경목 서대문형무소역사관장은 “한의계 인사의 항일투쟁은 일본군과 직접 교전하거나 고위 관리, 친일파, 일제 주요 기관에 타격을 입히는 격렬한 투쟁 방법을 택했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 상응하는 전략을 취하며 각 독립운동 단체에 참여하거나 민족종교 활동 등 다양한 장기적·계획적 투쟁을 전개했다”고 밝혔다.
박 관장은 이어 “국내외에서 한의사라는 직업을 통해 사람을 모으고, 독립운동의 연락본부 및 자금조달 역할에 주력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