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구조대원·자원봉사자에게 심신 안정과 새로운 희망 전달 1일부터 시작해 총 808명 진료, 심신 회복과 트라우마 치유에 앞장
지난 1일부터 운영됐던 무안공항 한의진료실이 18일간의 긴 여정을 마무리했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소중한 생명 179명이 희생된 가운데, 한의진료실은 유가족과 구조대원, 자원봉사자들에게 신체적·정신적 치유를 제공하며 비극의 현장에서 마지막까지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의료 지원과 물품 기부 이어져… 한의계의 연대와 헌신
한의진료실은 사고 직후 대한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전라남도한의사회·광주광역시한의사회·대한공중보건한의사협의회 등 한의계 주요 단체들이 인력과 장비를 긴급 지원하며 운영을 이어갔다. 의료진은 초기에는 하루 24시간 2교대로 긴급 진료를 이어갔으며, 이후 현지 상황과 여건에 따라 진료 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며 환자들의 회복을 지원했다. 침 치료, 한약 처방, 심리 상담 등 다양한 한의학적 접근을 통해 환자들의 회복에 매진했다.
진료 현장을 직접 찾은 한의계 주요 인사들의 지원도 돋보였다. 1일에는 대한한의사협회 윤성찬 회장, 박소연 의무부회장(대한여한의사회장), 최성열 의무/학술이사가 무안공항 한의진료실을 방문해 유가족과 의료진을 위로하고, 현장 상황을 점검했다. 5일에는 정유옹 수석부회장을 비롯해 박소연 의무부회장(대한여한의사회장), 유정규 기획/의무이사, 최성열 학술/의무이사가 현장을 찾아 치유의 손길을 직접 건넸다.
현장에서는 진료 지원뿐만 아니라 물품과 재정적 지원도 이어졌다. 중앙회를 필두로 전라남도한의사회·광주광역시한의사회·서울특별시한의사회·충청남도한의사회·강원특별자치도한의사회·전국시도지부장협의회·전국사무국처장협의회·대한한의학회 및 8대 온라인 쇼핑몰·더한탕전원·무안군보건소·고흥군보건소 등 많은 한의계 단체들이 물품과 인력을 아낌없이 제공했다.
특히 진료실 설치와 운영 과정에서 행정적 지원과 협조로 큰 역할을 한 조옥현 전남도의원(고구려한의원장)은 “사회적 재난과 참사 속에서 많은 봉사자들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며 깊은 감동을 받았다”며 “이러한 비극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전했다.
한의진료실을 찾은 환자 수는 18일간 총 808명에 달했다. 이들은 대개 감기, 두통, 소화불량과 같은 신체적 증상부터 불면증, 불안장애 등 심리적 어려움까지 다양한 문제를 안고 진료실을 찾았다.
현장에서는 심신 안정 효과가 높은 우황청심환 및 천왕보심단, 독감이 유행했던 당시 감기와 몸살 회복에 효과적인 쌍화탕과 패독산류, 그리고 근육통 완화, 소화기 증상 개선, 면역력 보강을 위한 다양한 한약이 처방됐다. 한약 처방은 긴장과 불안감을 느끼는 유가족에게 도움이 되었고, 체력 소모와 피로가 극심한 경찰, 소방대원 및 구조대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18일 해단식, 24시간 이어진 한의의료진 손길
무안공항 한의진료실 운영의 마지막 날인 18일, 정유옹 대한한의사협회 수석부회장이 대한한의사협회 의무팀 직원들과 함께 현장을 찾아 공식 해단식을 진행했다.
정유옹 수석부회장은 18일 동안 헌신한 의료진과 공무원, 자원봉사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며 “한의학이 국가적 비극 속에서 유가족과 구조대원, 자원봉사자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와 회복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정 수석부회장은 이어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한의학이 재난 치유 시스템에 정식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앞으로도 국민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치유하는 한의계가 되겠다”고 강조했다.
해단식에 참석한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그동안의 노고를 나눴다. 국창인 공중보건한의사(정읍시보건소)는 “현장에서 많은 분들이 찾아주시고, 필요한 치료를 받는 모습을 보며 도움드릴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돼 안도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의료진으로서 환자들에게 더 많은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치료 환경의 한계상 충분히 해드리지 못한 점이 안타까웠다”며 “그럼에도 시스템을 갖춰주신 대한한의사협회와 전라남도청에 감사하다”고 전했다.
사고 직후 내내 유가족 쉘터를 지키며 환자들을 한의진료실로 안내했던 자원봉사자 전미용 광주북구의회 의원은 “이곳에서 슬픔을 나누고, 함께 마음을 나눌 수 있음에 오히려 감사하다”라며 “여러 날 조건 없이 정성스레 치료해주신 한의의료진 덕분에 저도 회복하며 봉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해단식은 희생자와 유가족을 추모하는 묵념으로 마무리됐다. 비록 물리적 공간은 닫히지만, 한의진료실이 남긴 정신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윤성찬 회장은 “여기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재난 대응과 심리지원에 대한 체계를 구축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더 많은 이들이 한의학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정부와 협력하며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합동추모식과 ‘1229 마음센터’ 제안
같은 날 오전 무안국제공항 2층에서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 합동추모식이 열렸다. 추모식에는 유가족 700여 명을 포함해 국회의원, 지자체 관계자 등 1500여명이 참석했다.
추모식은 씻김굿, 묵념, 헌화·분향, 추모사, 추모공연 순으로 진행됐다. 헌화식에서는 희생자 179명의 이름과 공항 1~2층 계단에 남겨진 추모 메시지가 LED로 송출되며 참석자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추모식 이후 강기정 광주시장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과 만나 유가족과 사회적 피해자를 위한 치유 공간 ‘1229 마음센터(가칭)’ 조성을 제안했다.
이 공간은 유가족뿐 아니라 재난 피해에 공감하는 시민들이 서로를 위로하고 치유할 수 있는 자조 공간으로 계획됐다. 1단계는 광주시 동구 전일빌딩245 4층에 마련될 예정이며, 특별법 제정을 통해 국가적 재난 심리지원 플랫폼으로 기능을 확장할 방침이다. 강 시장은 “유가족의 뜻을 최우선으로 하여 센터 부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할 비극”
한의학은 과거 세월호 참사, 포항 지진 등 국내외 대형 재난 상황에서 침 치료, 한약, 정신건강요법 등을 통해 트라우마 극복과 신체적 회복에 기여해왔다. 이번 무안공항 한의진료실 또한 단순한 의료 시설을 넘어, 비극 속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온기를 전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2023년부터 ‘트라우마 한의 일차진료 전문과정’을 개설해 한의학의 심신의학적 접근을 통한 트라우마 치료를 다양한 트라우마 환자들에게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대한여한의사회 박소연 회장(대한한의사협회 의무부회장)은 “트라우마 치료는 단순히 개별 환자들의 회복을 넘어 사회 전체의 건강성을 회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이번 무안공항 진료를 통해 한의학이 유가족과 관계자들에게 의미 있는 위로와 치유를 전할 수 있어 보람을 느꼈고, 이후에도 지속적인 지원이 가능하도록 정책적으로 고려되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최성열 의무/학술이사이자 가천대학교 한방신경정신과 교수는 “이번 참사와 같은 국가적 비극 속에서 한의학적 트라우마 치료는 유가족과 관계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며 “한의학이 재난 상황 속에서 신체적, 정신적 치유를 제공하는 체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연구와 노력을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들은 국가 재난 트라우마 지원체계의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번 참사는 직접적인 피해자뿐 아니라 이를 목격한 국민 전체에게 심리적 외상을 남겼다. 정부와 관련 단체들이 협력해 장기적인 심리지원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무안공항 한의진료실은 단순한 의료 시설이 아닌, 재난 속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온기를 전달한 상징적인 공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곳에서 시작된 치유의 여정은 한의학이 재난 대응의 한 축으로 자리 잡는 데 밑거름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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